7월 31일, 영화 <사자>가 개봉했다. 7월 31일은 문화의 날이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갔을 것이다. 나도 오늘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러갔다. 오늘 개봉한 영화는 두개였다. <엑시트>와 <사자>. 나는 솔직히 별 생각 없이 사자를 보자고 엄마한테 얘기했다. 엑시트는 아이돌이 주연이기도 해서 꺼려지고 평소에 판타지 영화를 더 좋아하던 나는 사자를 보고싶었다. 사실 사자의 줄거리도 모르고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정말 큰 코 다쳤다. 이 영화는 보기보다 더 무시무시했다.
폼안나는 판타지 영화
나는 무교이다. 종교에 약간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때문에 영화가 더 나에게 안좋게 다가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내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것이니 이에 대한 불만은 적지 않겠다. 하지만 사자는 그런 점들을 전부 감안하더라도 너무 폼이 안난다. 사람들은 왜 판타지 영화를 좋아할까?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판타지를 영화를 통해 풀고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화려한 CG, 숨막히는 액션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폼이라도 나기는 해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영화는 폼이란 것을 철저하게 상실했다.
폼안나는 주인공
박서준과 안성기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고 있다. 안성기는 바티칸에서 온 구마신부이고 박서준은 잘나가는 격투기 선수다. 이 영화의 반전은 바티칸에서 온 구마신부보다 평소에 신도 믿지 않던 격투기 선수가 구마를 더 잘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영화 내내 도대체 안성기를 왜 바티칸에서 부른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안성기 혼자서 물리칠 수 있는 전혀 마귀는 없어보였다. 안성기가 아무리 성경을 외워도 마귀들이 소리지르고 지랄발작만 하지 도저히 구마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안성기의 필살기는 어떤 반지같은 것인데 그걸 마귀가 씌인 사람에게 갖다 대면 지지직하면서 마귀가 괴로워한다. 그렇다면 그냥 처음부터 그걸 들이댔으면 되는것 아닌가? 안성기의 구마의식은 정말 쓸데 없어보인다. 안성기는 마귀가 씌인 남자한테는 목이 졸려 죽을뻔했으며 여자한테는 포스그립을 당해 기절하고 그나마 어린 아이를 두번 정도 구마를 하다가 아이한테 쳐맞아 기절한다.
허례허식이 많고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안성기의 구마의식과 달리 박서준의 구마의식은 참 심플하다. 마귀가 씌인 사람을 물리적으로 패서 제압하고 성흔이 있는 손을 갖다대면 알아서 구마가 된다. 어쩌면 이를 보고 안성기는 자기도 모르게 현자타임이 왔을지도 모른다. 몇십년을 갈고 닦아왔을 구마의식이 신도 안믿는 격투기 선수가 손만 갖다대면 된다고? 안성기를 옆에서 돕던 최우식은 더 쎄게 현타가 왔을 것이다. 안성기는 최소 마귀랑 대화라도 할 수 있지 최우식은 안성기 옆에서 성경을 읽다가 마귀한테 쫄아서 도망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박서준이 폼나지는 않는다. 박서준의 액션신은 나름 볼만했으나 구마의 힘이 어디서 오는건지 어떤 방식으로 구마가 되는건지 영화에 전혀 나오지도 않는다. 어떤 초능력을 사용하는 슈퍼히어로가 영화에 등장할 때 그 힘을 얻게 된 계기를 영화적으로 잘 풀어내면 히어로가 가진 능력이 더 특별하고 범상치 않아 보이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박서준은 꿈에서 아버지를 만나자 갑자기 손에 그 힘이 생긴다. 아버지가 특별히 신부였던 것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경찰이었다. 아무리 선한 삶을 살고 이 세상을 떠났다지만 그거 하나로 신도 안믿는 아들한테 성흔이 생긴다고?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더 가관이다. 우도환과 박서준의 마지막 결투에서 박서준은 우도환에게 당해 기절하고 다시 꿈을 꾼다. 이 꿈에서 세상에 무려 '아버지'가 나온다. 이 영화는 사실 피구왕 통키인가? 소년탐정 김전일인가? 아버지의 환영을 보고 파워가 강해지는 전개는 몇십년전 소년 만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전개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정말 웃음이 터졌다. 애니메이션에서나 등장하는 '아버지 버프'를 영화에서 보는 것은 처음인 것같다.
폼안나는 악당
이 영화에서 우도환은 악당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악마를 숭배하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사람들에게 마귀를 씌운다. 사실 이 부분도 정말 실망이다. 보통 영화에 악당이 나오면 악당이 왜 그런짓을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반드시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것은 나오지도 않는다. 그냥 우도환은 악마를 숭배하고 사람들을 마귀로 만든다. 영화에서 악마에게 영생을 달라는 말을 하지만 영생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사람의 영혼을 바치는 것이지 사람을 마귀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을 마귀로 만드는가? 마귀로 만들어서 뭐 어쩌라고?
아무튼 이 영화에서 심각한 부분은 악당조차 폼이 안난다는 것이다. 어떤 영화는 빌런이 너무 매력있어서 주인공보다 빌런이 더 인기있는 영화들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빌런인 우도환은 매력있기는 커녕 너무 웃기다! 우도환의 능력은 악마의 힘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마귀로 만들고, 원거리에서 사람을 죽이거나 해치는 능력이다. 그런데 그 능력을 사용하려면 무슨 파워레인져에서 나오는 악당이나 쓸법한 검정색 망토를 착용하고 제삿상 앞에서 계속 주문을 외워야한다. 우도환은 사실 무당인가? 영화 제일 초반에 나오는 꼬마 무당이 더 카리스마 있다. 제일 가관이 장면은 우도환이 개를 조종하기 위해 제삿상 앞에서 개 흉내를 내는 장면인데 정말 '개'같아서 웃겼다.
물론 악마를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제삿상에서 주문을 외우는 것은 당연한 과정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배경은 21세기다. 어차피 판타지 영화인데 왜 악마를 그렇게 폼안나게 불러야하는가? 우도환이랑 비슷한 능력을 가진 애니메이션 <데스노트>의 라이토는 노트에 다가 이름을 적으면 사람을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우도환이 사람을 죽이려면 제삿상 앞에서 주문을 외우고 야단법석을 떨어야 한다. 악마는 정말 허례허식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영화의 결말에서, 박서준은 우도환을 찾아 클럽같이 생긴 '바빌론' 이라는 곳으로 향하고 그 곳에서 박서준과 우도환이 최후의 결투를 벌이게 된다. 박서준은 오른손만 대면 알아서 구마가 되기 때문에 우도환이 쫄았는지 (이것까지 폼 안난다) 또 한 번 제삿상에서 악마한테 빌기 시작한다. 그러자 악마는 심장을 바치라고하고 우도환은 처음엔 심장을 바치면 죽는다고 거부를 하다가 마침내 심장을 찌른다. (영생을 바라는거 아니었어??) 그리고 우도환은 '변신'을 하게 되는데 그 꼴이 가관이다. 정말 그야말로 '해산물'이라고 느낄수 밖에 없는 CG를 두르고 나온다. 이게 최종 보스라고? 허접한 CG는 안 그래도 폼 안나는 빌런을 더 폼 안나게 한다.
유치한 스토리
가뜩이나 인물들도 매력이 없는데 스토리도 진짜 개판이다. 영화에 쓸데 없는 장면이 너무 많다. 진짜 너무 쓸데 없어서 이 장면이 도대체 왜 있는건지 궁금한 장면이 있는데, 바로 우도환과 박서준이 처음 만나는 장면이다. 우도환은 신부의 모습으로 변장을 해서 박서준을 만난다. 그러더니 우도환은 자신이 최신부이고 자신도 박서준과 똑같은 힘이 있는데 그 힘을 쓸 수록 손에 상처가 더 커지니까 박서준에게 그 힘을 쓰지 말라고 말한다. 빌런이 주인공을 속이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그 말을 귓등으로 안듣는다. 그걸 넘어서 주인공이 그 말을 기억도 못하는 것 같다. 그런걸 들으면 안성기한테 물어볼만도 한데 물어보지도 않고 그렇다고 정말로 힘을 쓰면 상처가 커지는지 고민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 장면은 영화 내에서 없는 취급을 당하는 것 같다. 어쩌면 첫 촬영에 그 장면을 찍었다가 중간에 시나리오가 바뀌었는데, 분량이 모자라 그냥 바뀌기 전 시나리오로 찍은 장면을 영화에 넣은 것 같다.
줄거리 자체도 너무 유치하다. 애니메이션도 이보단 덜 유치할 것 같다. 이야기 전개가 너무 흔하디 흔한 소년만화의 줄거리의 클리셰를 전부 따르고 있으며 '아버지 버프'는 클리셰의 극치다. 결말에서 '아버지 버프'를 받고 손에 불이 붙는 장면은 올해 나온 영화 중 제일 유치한 장면일 것이다.
총 평
영화가 끝나고 나서 배우들의 종교를 제일 먼저 찾아본 영화는 이 영화가 처음일 것이다. 이런 영화의 시나리오를 받고 박서준, 안성기, 우도환 같은 배우들이 촬영을 승낙했다는 것은 그들이 천주교인이 아니라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다. 실제로 찾아보니 박서준은 무교이고 안성기는 천주교, 우도환은 기독교였다. 솔직히 종교라도 있으면 이해라도 되지 박서준은 대체 왜?!
이 영화의 제일 큰 반전은 후속작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최우식이 안성기의 편지를 받는 장면이 나오고 자막이 나오는데 '최신부는 영화 <사제>에서 돌아옵니다' 라는 것이다... 아니 이 영화에 후속작을 만든다고? 내 뒷통수가 얼얼 했다. 대체 이 영화의 감독은 어떤 약을 했길래 이 영화를 시리즈로 만들 생각을 한 것일까?
세상엔 이것보다 더 구린 영화가 많겠지만 내가 본 영화 중에선 이게 제일 구렸다. 나는 태어나서 이 정도 되는 영화를 난생처음 봤다. 근데 신기한건 후속작 <사제>가 나오면 보러갈 것 같다. 그 영화는 또 얼마나 웃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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